스무살, 대학에 입학하며 집을 떠나여러 곳을 전전하며 살았다.떠날 것을 예상해야했기에짐은 언제나 단촐하였다.집이라기보다 방에 가까운 공간들,생활에 필요한 것이 아니라생존에 필요한 것으로 꾸려진 건조한 자리들.그 때 나에게 집은 어디였을까. 외할머니는 돌아가시기 전에 우리집에서 살았다.건강하지 않았던 생의 마지막 시간을 내쫓기다시피 건너온 막내딸의 집에서 보내었다.그런 이유로 할머니의 짐도 단촐하여서몇 벌 안되는 옷으로 사계절을 지냈다.그 때 할머니에게 집은 어디였을까. 내가 수없이 거처를 옮겨다니던 시절엄마의 집 서랍장 한 칸에는내 사계절의 옷이 담겨있었다.계절이 바뀌면 엄마는 나에게 옷을 보내주었고나는 철지난 옷들을 돌려보내었다.때가 맞지 않거나작아지거나 더이상 찾지 않는 옷들이 화석처럼 머물러 있는 자리,고요하게 정지된 내 과거의 자리. 방황이 고되어 아무 곳에도 뿌리내리지 못한 채 물옥잠처럼 떠다니는 날에는엄마의 집 서랍 한칸에 담겨있을 내 옷들이 생각나곤 했다.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아니어도그 익숙한 냄새와 정지된 느낌이 그리운 순간들이 있었다. 외할머니의 옷은 어디에 있었을까.다시 만나지 못할 줄 모른채어느 서랍장 안에 잠들어 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