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가 끝나자공방 정원의 풀떼가 습격을 시작하였습니다. 관우를 인질로 잡음우리 관우를 위협하다니이들의 방약무인을 더이상 참을 수 없도다!그동안 몸을 숨긴 채 살고 있던은둔 낫질가가 일어납니다.삼대째 이어오는 낫질의 명가 출신,전설의 풀 훼손가 찰리는그렇게 호방하게 평원으로 나섰습니다.풀들은 작년의 패망을 만회하려는지덩굴은 더욱 찐득하게,풀대는 더욱 딱딱하게 자라있더군요.그리고 하늘도 그들의 편인지올여름은 기록적인 폭염이 이어졌지요. 땡볕에 낫질을 30분쯤 하고 나니 어질어질하여눈물을 머금고 일단 후퇴하였습니다.패망을 예감한 찰리는 그날 밤,새벽 4시에 벌떡 일어나쿠팡에서 예초기를 검색합니다.어둠 속에 봉두난발을 하고 앉은 괴이한 몰골로칼날 모양과 충전 방식을 비교해가며지혜로운 쇼핑을 마친 뒤 다시 쓰러져 잡니다.예초기는전기톱만큼이나 두려운 공구이기에이것으로 풀베는 일은 나의 손을 떠났구나, 했습니다.예초기라 하면구릿빛 근육에 땀이 미끌어져내리는,아드레날린 물씬한 마초 느낌 있잖습니까.굳이 말하자면젊은 브래드 피트가 찢어진 청바지 차림으로담배 물고 눈을 찡그리고,입은 싱긋 웃는 표정으로 들고 있으면 좋을(내가 좋을)그런 공구, 남자 공구.브래드는 아니어도 아쉬운대로(?) 보스가 있으니예초기는 너의 것.이제 나를 넘어 네 손으로 베어보거라.다음날, 포장조차 위풍당당한예초기가 도착하였습니다.박스를 뜯은 보스는 꼼꼼하게 설명서를 살피고시험 가동을 해보더니(!) 제 어깨에 예초기 줄을 메어주고(?)구석구석 설명을 하기 시작합니다.(??)충전기는 이렇게 끼우구요,이 버튼을 누르면 작동하고,날은 이렇게 도니까 우에서 좌로 움직여요,해봐요, 그렇지 그렇지, 잘하네,이런 식의 쓸모없는 자상한 설명들이 30여분간 이어지고 찰리는 실전에 투입되었습니다....남자 공구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그것을머쉰건처럼 메고다시 무한의 정글 앞에 섰습니다.장비는 업그레이드되었는데 왜 마음이 암담할까.풀떼의 아우라가 무섭고 예초기는 더 무섭고들판은 황량하고정수리는 터질듯 더웠습니다. 잘린 풀을 덕지덕지 뒤집어쓴 채구릿빛 얼굴로 땀을 흘리며 풀을 베고 있는데담배를 피우러 나온 보스가 그늘에 서서 손짓을 합니다.교대하자는 얘긴가보다 하며예초기를 끄고 깡총깡총 뛰어가니아직 웅웅대는 내 귀를 배려해 보스가 크게 외칩니다.위험하니 줄을 더 길게 해요! 그렇게 위험하면 네가 하지 그러니!그러나 이것은 소리없는 아우성.저 자는 내 편이 아니다.저 자는 풀과 한 편이다.분명 시작은 풀과의 응전이었는데중간부터는 대상이 달라진 것 같은 상태로,어쩐지 더 격하게 전의를 불태우며풀을 다 베었습니다.우수수 쓰러진 풀떼를미야모토 무사시처럼 내려다보며세상은 외로운 곳이고 나는 이렇게 풀을 잘 베니하늘이 나에게 브래드 피트를 포상으로 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