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우가 마지막으로 줄을 끊고 우리집으로 도망온 겨울우리는 관우를 훔쳤다.보리와 노는척 하룻밤 마당에 머물게 하였다가어둠이 드리운 새벽에바깥에서 보이지 않도록 몰래 차에 실어 공방으로 데려왔다.훔쳐오기 전 관우는지붕이 날아간 집에 눈이 쌓여 들어가지 못한채차가운 컨테이너 뒤 응달, 겨우내 녹지 않는 빙판 위에 살고 있었다.1미터 정도의 줄에 묶인채. 밥그릇은 늘 비어있었고물그릇에는 언제 쌓였는지 모를 눈이 얼어있었다.그래서 우리는 관우를 훔쳐오는 것보다훔쳐오지 않는 일에 더 큰 죄책감을 느꼈다.아이러니하게도관우를 키우던 이는 우리에게 참 잘해준 사람이었다.새해 아침 우리에게 토란탕을 끓여주고연이를 키울 수 있게 마당 한 켠을 내준 이였다.그러니 이후 동네에서 그녀와 마주칠 때마음이 불편치 않았다면 거짓말이겠지만뼈만 남았던 몸에 살이 붙고웃는 표정이 생기기 시작한 관우를 볼 때면내 감정보다 네 안위가 더 중요하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그대로 두었다면 네가 그 겨울을 넘겼을까. 그랬다하더라도 다음해 복날을 넘겼을까. 열흘마다 찾아오는 잔인한 사람의 절기를. 일 년쯤 지난 뒤, 그녀에게 관우를 훔친 이가 우리라고 털어놓았다.그녀는 관우를 내놓으라거나 책망하지 않았고그저 갑자기 개가 없어져서 걱정했노라고,너희가 데려갔으면 잘 키울거니 괜찮다하였다. 사랑은 흔히비교할 것 없는 압도적 감정이라 여겨지지만 홀로 살 수 없는 연약한 존재에게 선택의 여지가 있다면그들은 사랑보다 보살핌을 택할 것이다. 그들을 하루라도 더 살게하는 것은제멋대로 생겨났다가 사라지는 못믿을 감정이 아니라 끼니를 챙기고 비바람을 피하게 하는 손길과몸을 움직여 돌보는 부지런한 연민일 것이다.그 날 이후, 관우는 배불리 먹고 신나게 뛰어놀며 살고 있다.굶을 걱정 없이, 버려질 걱정 없이,눈만 마주쳐도 반가운 이에게배신당하지 않을 사랑을 맘껏 쏟아부으며, 한때 자신을 위협했던 복날이 무엇인지 끝내 알지 못한채남은 날들을 평화롭게 살아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