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 한 살,시간은 많고 할 일도 많다면 많겠지만하고싶은 일이 없어 마음이 무료하던 날들. 수업이 일찍 끝나버린 점심 무렵부터 TV의 화이트 노이즈를 자장가 삼아 잠들때까지말을 할 사람이 없었다. 용건이 있어 하는 말들 말고텔레비젼 같이 보면서 쟤는 연기가 저게 뭐야,라든지밥 같이 먹으면서 아유 너무 짜다, 혹은 이거 감자 좀 먹어봐, 같은일상적인 얘기들을 할 사람이 없어서땅을 파고 몸을 묻어버리고 싶을만큼 외로웠다. 아는 사람을 마주치고 싶어서학교 주위를 다섯 바퀴 정도 돌다가가로등이 희미한 골목길을 걸어 집으로 돌아올 때면피곤과 외로움에 몸이 딱딱해지곤 했다. 담벼락에 앉은 고양이에게 야옹, 인사를 건네다가내 목소리가 잠겨있음을 알아차리면혼자 멋적었고 지레 서글펐다. 엄마가 차려주는 밥을 먹고가족들과 과일을 먹는 사람들은 느끼지 못할홀로서기를 시작한 자의 외로움과가족같은 연인을 잃어보지 않은 이들은 모를가슴 따끔한 고독감이 푸른 새벽부터 검은 밤까지 떠나지 않았다.일정 시간 치이면 단련이 되는 감정도 있으나외로움은 그런 종류가 아닌 것 같다. -누군가와 함께 살게 된 이후책을 읽다 느닷없이 외로움이 엄습하면대뜸 누군가를 찾으러 간다.내 눈 앞에누군가 늘어져 영화를 보고 있거나 주방에서 음식을 만들고 있는 모습이 보이면외로움은 분무기로 뿌린 물처럼 샤라락 흩어진다.어디있어, 하고 불렀을 때 어디선가 여기, 라고 답하는 소리가 들려오면그것으로 마음이 편해진다. 다음에 마트가면 샴푸사야겠네,여름도 아닌데 왜 벌써 덥지, 이런 혼잣말 같은 얘기에 응, 그러게, 라든지알아듣지 못하였으나 호의적인 꼬리흔듦, 니야옹 정도의 무심한 울림이 돌아와도 거칠고 날카로운 외로움은 설 자리를 잃는 듯하다.따뜻한 핫쵸코처럼 달달한 안도감,그리고 대단한 무언가가 필요한게 아니라는 생각도. 옆에서 들려오는 숨소리, 함께 배고파하는 느낌,거실을 걸어다니는 발소리, 숨쉴때 오르내리는 몸의 움직임.존재의 기척은 외로움을 희석시킨다. 이 공기로 숨쉬는 이가 나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만으로도버석대는 여린 영혼이 제자리에 편히 앉는다. 가족이든 연인이든,친구든 룸메이트든,아이든 강아지든 고양이든 토끼든그런 이유로 같이 산다고 말할 일은 없겠지만 얼음장 위에 혼자 서있는듯 외로운 날에는그보다 더한 위안을 주는 것이 없었다. 체온을 가진 존재의 힘은묵직하고 온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