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구로 만든 나무는 매끈하고 부드럽지만시작 단계의 나무는 상상 이상으로 거칩니다.작업을 시작하는 단계의 나무는 대체로 이런 모습이지요. 거친 면이 사라질 때까지 대패로 1밀리미터씩 깎아내며 여러 번 평을 맞춥니다.대패는 몹시 러프한 도구인지라대패질을 마쳐도 아직 표면이 거칠지요.손으로 쓸어보면 까끌한 느낌이 듭니다. 그래서 사포로 문질러 표면을 다듬습니다. 이 과정을 샌딩,이라고 부르지요. 샌딩을 할 때에는 평을 무너뜨리지 않도록 일정한 힘으로,모든 면을 고르게 스치도록,그러면서 대패날 자국을 모두 지워내야 하며사포의 자국은 남기지 않아야 합니다. 단순해 보이지만 체력과 물리적인 시간, 집중력을 유지해야하는 시간이예요. 거친 사포로 한 번,중간 사포로 다시 한 번, 더 고운 사포로 다시 한 번, 이런 식으로거침의 정도가 다른 사포를 수 십장 써가며 차근차근 샌딩합니다.이 과정 내내 손으로 쓰다듬어 보고여러 각도의 빛으로 살펴보며 확인합니다. 읽고 있자니 왠지 모르게 나른해지는듯(잠이 오는듯) (그만 읽고 싶은 듯)매우 단순한 폐곡선 모양의 무한 궤도를 도는 느낌이 들지 않습니까.실제로 샌딩 과정을 보고 있으면 우리는 전생의 과업으로 림보에 빠진걸까 싶어집니다. 한 단계에 쓰이는 사포는 한 두장이 아닙니다.만사 예민한 보스는 사포에도 어김없이 예민하여고가의 사포를 아낌없이 사용하는데이 아낌없음의 정도가 남달라서 보스가 사용한 사포와 새 사포를 구별하기 어렵습니다.(?)샌딩을 시작하기가 무섭게 교체! 교체!교체! 하여 보스가 돌아선 자리에는 추수를 마친 들판처럼 사포들이 우수수 남겨져 있습니다. 경영을 생각해야할 이가 이렇게 계산이 없어도 되는지. "6+3이 9인가" 기나긴 샌딩을 마친 나무는 무장해제된 군인처럼 연약한 상태가 됩니다.오랫동안 보호해주던 조직이 모두 사라졌거든요.이 상태에서 물 한 방울이라도 떨어지면 어떻게 해도 자국이 없어지지 않습니다. 한 번도 공기를 접해본 적 없는 세포들이 세상에 노출되면공기와 평형상태가 되려 수분을 뿜어내거나 흡수하죠.반응 속도는 매우 빨라서 하루만 그대로 두어도 나무가 휘어집니다.그래서 샌딩이 끝나기가 무섭게 오일로 보호막을 만들어주죠. 연약한 세포들을 충분히 적실만큼 오일을 듬뿍 바르고,스며들기를 기다렸따가 부드러운 천으로 남김없이 닦아냅니다. 천이 스친 자국이 없도록, 손끝 흔적도 남지 않도록 세심하게. 차분해진 느낌이 보이나요. 이제 고요하게 기다리는 일만 남았 다면 좋겠지만 그렇게 쉽게 벗어날 수 있다면 그게 림보겠습니까. 오일이 건조된 뒤 다시 오일 바르는 과정을 여러 번 반복하는데, 이 사이에 샌딩이 또 등장합니다. 오일이 마르는 과정에서 미세한 기포가 뿜어져 나와 쓰다듬어보면 오돌도돌한 느낌이 들거든요. 그래서 아주 고운 사포로 샌딩한 뒤 다시 오일을 바릅니다. 이 과정이 반복될수록 나무는 점점 차분해지고, 손에 닿는 느낌은 점점 매끈해집니다. 그러나 이것은 면 하나를 다듬는 단계일 뿐입니다. 당신의 손이 닿는 모든 면이 위의 과정을 똑같이 거쳐요. 보이지 않는 뒷면도, 촘촘한 빗살 하나하나도. 이런 작업 방식은 애프터문 공방만 고집하는 형태는 아닐 겁니다. 나무를 아끼고 좋은 결과물을 내고 싶어하는 모든 공방들이 시간을 아끼지 않고, 피로를 기억하지 않으려 애쓰며 차근차근 일하는 방식일 거예요. 세상의 많은 것들이 빠르게 만들어지는 것처럼 보이지만어쩌면 그것은우리가 아는 것이 너무 좁은 영역에 국한되어 있어서겠죠. 사람의 몸을 다루는 일도,농작물을 재배하는 일도,음식을 만드는 일도, 기계를 수리하는 일도조금만 생각해보면 마냥 간단하지만은 않을 겁니다. 세상에는 우직한 방식으로 만들어지는 영역이 있을 거예요.무엇 하나 허투루 건너뛸 수 없는 정직한 세계, 적어도 나무를 다루는 세계의 일은 그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