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아끼던 수국 나무에 보리가 돌진하여커다란 가지 하나를 뚝, 부러뜨렸는데 어제 또 돌진하여 남은 가지 하나마저 부러뜨렸다. 그렇게 덩그러니 나무 기둥만 남아올해는 찬란한 수국꽃을 볼 수 없게 되었다. 마음이 아픈 건아끼던 나무가 부러져서기도 하겠지만 작년 가을, 그 나무아래에 우유를 묻어주었기 때문에.원래도 수국을 아꼈지만그 후엔 알지 못하는 사이 몇 배의 감정을 담았던 것 같다.담담하게 얘기할 때도 아직 아프고,웃으며 말할 때에도 역시 아직 아프다. 이별은 늘 응집된 형태로 일상에 파장을 일으키기에그 여파에 휩싸여 있을 때에는남은 것들이 하찮아 보이기도 하고,일상을 꾸려가는 작은 노력이 무의미해 보이기도 하지만 밥 한그릇 퍼주는 아침,머리 한 번 쓰다듬는 저녁,아무 일 없다는 듯 곁에 머물러 있는 오늘이언젠가 가슴 아리도록 그리워할 일상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늘 당연히 여기는 평화,그 평화를 지켜주는 존재들 위로 흐르는 비가역적인 시간.시간에 대해 할 수 있는 일이 아무 것도 없기에이 평화는 참으로 연약하고당연하지 않다. 수국은 내년을 기약하고보리는 늘 사랑하는 것으로.마당에 구덩이를 파든, 잔디를 다 뽑든,나무를 부수든 무엇을 하든네가 주는 평화는 결코 연약하지 않기에 보리는 늘 사랑하는 것으로.